본문 바로가기

Newsletter/Zerohedge

미국인들의 401(k) 긴급 인출, 역대 최고 기록

미국인들이 노후 대비 저축을 꺼내 쓰는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내용인데요, 숫자만 보면 꽤 충격적입니다.

6%, 그냥 넘어갈 숫자가 아닙니다

뱅가드(Vanguard)가 관리하는 401(k) 플랜 가입자 중 지난해 긴급 인출(hardship withdrawal)을 한 비율이 6%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2024년엔 4.8%였고, 팬데믹 이전엔 약 2% 수준이었으니까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세 배가 된 셈입니다.

참고로 뱅가드는 미국에서 거의 500만 명의 401(k) 가입자를 관리하는 초대형 운용사예요. 그 중에서 6%가 노후 자금에 손을 댔다는 건, 숫자가 작아 보여도 실제 인원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401(k)가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예요. 우리나라의 IRP나 퇴직연금 DC형과 비슷한 구조인데, 직장인이 월급에서 일부를 세전으로 떼서 적립하고 노후에 쓰는 거죠. 중간에 꺼내면 소득세에 10% 페널티까지 붙는 구조라, 정말 급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6년 연속 증가, 뭔가 구조적으로 잘못된 거 아닐까요

긴급 인출이 늘어난 건 올해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6년 연속 증가입니다. 뭐, 여러 이유가 있긴 합니다.

2018년에 규정이 완화됐어요. 원래는 401(k) 대출부터 먼저 받고 그래도 안 되면 긴급 인출을 신청하는 구조였는데, 그 선행 요건이 없어졌습니다. 문턱이 낮아졌으니 이용자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죠.

2022년에는 또 다른 법 개정이 있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연방 재난 지역 주민도 긴급 인출이 가능해졌고, 3년에 한 번 최대 $1,000(약 145만 원)까지는 페널티 없이 인출할 수 있게 됐어요.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인데, 결과적으로 "꺼내 쓰기 쉬운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뭐, 예상된 일이었죠.

인출 이유 1위가 "집 잃지 않으려고"라는 현실

지난해 긴급 인출을 한 사람들의 가장 흔한 이유 두 가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주택 압류나 퇴거를 막기 위해서.
둘째, 의료비 충당.

중위값으로 꺼낸 금액은 $1,900(약 275만 원)이에요. 집을 지키기 위해, 병원비를 내기 위해 노후 자금을 헐었다는 건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전세 보증금이 날아가서 어쩔 수 없이 퇴직금을 깼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죠. 경제적 압박이라는 건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코너로 몰아붙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식 숫자는 "멀쩡하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재밌습니다. 당연히, 공식 발표는 따뜻합니다.

401(k) 평균 잔액은 2025년에 13% 올라서 역대 최고인 $167,970(약 2억 4,355만 원)를 기록했고요. 가입자 중 45%가 저축률을 높였다고 합니다.

실업률도 여전히 낮고, 소비 지출도 탄탄하다고 하죠. 뱅가드의 전략 은퇴 컨설팅 부문 책임자 데이비드 스티넷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저축하고, 계속 투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문적인 방식으로 자동 리밸런싱되고 있습니다."

듣기 좋은 말이긴 한데, 바로 몇 단락 위에서 집 날아갈까봐 노후 자금 꺼낸 사람이 역대 최다라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평균을 올리는 사람들 아래에, 평균에도 끼지 못한 채 무너지는 사람들이 조용히 늘어나고 있다는 거죠.

자동 가입이 만들어낸 역설

또 하나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습니다. 긴급 인출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로 자동 가입 확산이 꼽히고 있거든요.

뱅가드가 관리하는 약 1,300개 사업장 플랜 중 2025년에 61%가 신규 입사자를 자동으로 401(k)에 가입시켰습니다. 2013년엔 34%였어요. 더 많은 사람이 가입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긴급 상황에 꺼낼 수 있는 돈도 더 많아진 거죠. 저축 장려 정책이 결과적으로 "긴급 ATM 풀(pool)"을 확대한 셈입니다.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뭘 봐야 하냐면

평균 잔액 신고가, 참여율 신기록. 숫자만 보면 미국 가계는 탄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용 상담 기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는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해요. 이건 예전엔 저소득층만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이제는 중산층도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신호거든요. 모기지 연체도 슬금슬금 늘어나고 있고요.

"경제는 괜찮습니다"라는 공식 발표와 "집 잃지 않으려고 노후 자금 꺼냈습니다"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 솔직히 이게 지금 미국 경제의 가장 솔직한 자화상 아닐까요.


원문: https://www.zerohedge.com/markets/americans-are-plundering-their-401k-savings-record-numbers

반응형